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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1일 화요일

난 알지 못해요!

타자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때 언제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호기심을 갖듯이, 비한국인의 시각은 한국 문화 관찰에 있어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 있어 가장 즐겁고 유쾌한 영감의 원천은 바로 지금 막 한국어를 배우는 남자친구이다.
남자 친구 왈: 우리 집에 가는 길 알지 못해요.
나 왈: this is grammatically correct, but sounds awkward, you should rather say 몰라요.
이 때, 당연시했었던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어에서만 유독 '알다'의 부정형을 쓰지 않고, '모르다'라는 별개의 단어를 쓰는 것이다. (안먹어, 안뛰어, 공부 안해 등등 다른 단어에 있어서는 안 부정형이 성립되지만, 알다와 있다의 경우 독립적 부정단어를 써야 한다.)
내가 아는 범위인 영어, 라틴계열의 언어, 독일어, 심지어 아시아계 언어인 중국어에서도 '모르다'라는 단어는 부재하며 not know, no saber 등의 '알다'의 부정형이 일반적이다.
'알지 못하다'는 부정형으로 부정적 어감을 수반하여, 자신이 응당 알아야 할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수동적 행위의 뉘앙스가 강하다. 즉, 어떠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경우, 알지 못한 책임이 발생하는 것이고, 때에 따라 알아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모르다'의 경우 긍정형으로 부정적 어감을 동반하지 아니하며, 수동적이기보다 주체의 알고자 하지 않는 의지가 반영된 능동적 행위의 뉘앙스가 강하다. 어떤 사실을 모르더라도, 알아야 하는 책임이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이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모르쇠'라는 단어는 순 한국어로 아는 사실을 모르는 척 일관한다는 뜻이다. '모르다'의 능동적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 단어의 쓰임인 것이다. 반대로 '모르쇠'를 영어로 번역하면, 'not knowing', 'knowingly'로 번역되지 않고(물론 모르쇠가 파생단어이긴 하지만) 'playing dumb', 'playing ignorant'로 번역된다. 한국어의 '모르다'의 단어의 능동성을 영어와 대비해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왜 이러한 표현이 생겼을 까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체면을 잃기 싫어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비롯된 표현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비슷한 문화권인 중국어와 일본어에도 없는 '모르다'라는 표현은 같은 유교문화권 내에서도 특출난 우리의 체면 차리기 정신을 대변하는 것인지 ㅋㅋ 뭐, 체면 차리기와 유교와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다의 어원은 조선 시대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니 나의 얄팍한 지식과 갈대같이 가벼운 지식의 대한 의지는 여기서 스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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