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터키 국민들은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제 손으로 독재자를 뽑아냈다.
터키 선거 결과를 숨죽여 지켜본 사람들은 터키인 뿐만이 아니었다. 독일내 터키 이민자들의 64%가 독재에 찬성했고, 이는 당연히 신문 일면을 휩쓸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독재를 지지하다니,
이는 다시금 독일 내에 무슬림,
터키인 혐오 감정에 불을 지폈다.
독재자를 뽑은 터키인들은 터키로 돌아가라는 둥, 터키인들은 독일 민주주의에 암적인 존재라는 둥 터키 혐오 글들이 SNS를 휩쓸었다.
도대체 왜 터키 선거 결과가 독일에서 중요할까?
터키 출신 독일인,
독일 전체 인구의 3.75%, 제 1 외국인 집단
독일 주재 터키인은
3백만명으로, 전체 독일 인구의
3.75%를 차지하며,
독일에서 가장 커다란 외국인 집단이자,
터키 이민자가 가장 많이 사는 외국이다. 이 3백만명 중 이번 터키 선거 유권자는
1.5백만명. 전체 터키 유권자 숫자가 5천 5백만명임을 감안하면, 독일은 터키 정치인에게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표밭이다. 이미 많은 터키 정치인들이 유세를 위해 네덜란드나 독일을 방문했다. (출처: 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deutschtuerken-doppelte-staatsbuergerschaft-das-sind-die-fakten-a-1106363.html)
IS와 난민을 둘러싼 터키와 EU의 외교적 문제
하지만, 이번 선거는 시리아와 난민 문제를 둘러싼 유럽과 터키의 외교 문제, 유럽 내 무슬림 혐오 감정 및 무슬림 근본주의로 인해 유럽의 이목이 집중됐다.
현재 터키는 시리아 난민 300만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IS 테러 최전선 국가이기에, 유럽에게 터키는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난민을 유럽으로 내보낼 것이라며, 터키의 EU 가입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은 현재 독재 국가 터키를
EU에 가입시키기에는 EU 원칙에 위배되고, 가입을 불허하자니 난민 문제가 걱정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유럽 언사를 위풍당당하게 늘어놓는 에르도안이 독재자가 되었으니 유럽은 더 큰 골머리를 앓게 됐다.
무슬림 터키인들의 차별과 소외 혹은 동화 불능의 이질적 민족?
에르도안, 독일 내 터키인들에게 “터키인” 자긍심 고취
독일의 외교 문제로 끝날 수 있었던 터키 독재는 앞서 설명한 3백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독일 내 터키인의 존재로 인해 독일의 국내 정치 문제로까지 번졌다. 전후 경제 복구를 위해 임시 노동자
(Guest workers)로 독일에 온 터키인들은 가족 동반 이주와 높은 출산율로 그 수를 빠르게 늘려갔다. 임시 노동자 성격상, 대부분 터키 이민자들은 보수적, 종교적이었으며, 저교육층이었기에 독일 사회로의 통합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터키 출신 이민자들은 취업률, 학업 성취율 등에서 독일인에 비해 성적이 나빴다.
노동자 100명당 저학력 노동자 비율. 위에서 아래로 터키,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유고슬라이바, 스페인 순 |
하지만, 터키 이민자만이 독일 사회 통합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출신 임시 노동자 이민자들의 상황 역시 비슷했다. 그러나 터키인들은 가장 큰 외국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뭘 해도 눈에 더 잘 띄었다. 타자화된 터키인들은 차별이 싫어서 혹은 살기 편해서 터키인 마을로 이주를 했다.
이미 독일로 건너간 친척과 친구를 따라 혹은 결혼을 통해 더 많은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민을 왔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구사하지 않고, 터키어만으로도 터키인 마을에서는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Paul Collier 교수에 따르면, 외국인 커뮤니티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버리면, 그 자체만으로 자생력이 생겨, 주류 사회에 동화 혹은 편입되는 이주민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이는 또 다시 커뮤니티 확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Exodus, Paul Collier)
그래도 9.11 전까지 터키인들은 그저 “(사회 보장 제도나 축내는) 외국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9.11 이후, 터키인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다.
많은 터키인들은 9.11 이 후, 더욱더 심각한 차별과 배제를 겪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http://www.huffingtonpost.de/yasin-bas/auswirkungen-von-911-auf-muslime_b_8121530.html)
설상 가상으로,
무슬림 근본주의 역시 유럽에서 세를 확장했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은 몇몇 무슬림 이맘은 무슬림 율법인 샤리아가 민주주의 헌법보다 위에 있다며, 유럽의 무슬림 정복을 설파했다. 물론, 이러한 공포는 과장된 것이지만, 무슬림이 과연 서구 문명과 양립 가능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주재 터키인들은 64%의 지지율로 에르도안의 독재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필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자 였기에 이 선거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슬림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종교 때문이든, 낮은 교육 수준 때문이든 독재를 찬성했다는 것은 어쨌든 민주주의 서구 사회 적응 실패 혹은 거부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에르도안은 이전 정치인과는 다르게 독일과 터키를 대결 구도에 놓고,
지금 독일은 이전의 나치와 다름 없는 파시스트라며 독일을 일부러 도발하기도 하였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이 이를 독일 주재 터키인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고취함으로써,
독일 터키인의 표심을 공략했다고 분석한다.
터키와 독일 선거 모두 투표할 수 있는 이중 국적자가 5백만에 달하는 상황에서 “터키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에르도안은 독일을 나치에 비유했다.
없던 갈등도 만들어내는 언론들의 과잉 보도?
실제 터키 독일인들
25%만 에르도안 지지
터키인들의 독재 찬성은 독일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회 통합 실패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언론이 거론하는 것처럼 터키인들은 진짜 독일 사회 적응에 완전히 실패한 것일까? 독일 언론들 모두 64% 지지율이라는 숫자를 헤드라인에 내세우며, 대다수의 터키인들이 에르도안을 지지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3백만 총 터키 이민자 중 1.5백만명이 유권자였고, 이 중에 42%만이 투표를 했으며,
이 중에
64%가 찬성표를 던졌다. 즉, 총 터키 이민자의
25%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이러한 전체 그림을 설명한 언론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언론 역시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터키 선거 결과를 과장 보도하였고, 이에 독자 역시 “터키 문제”에 과잉 반응을 한 것은 아닐까?
Joel S.Fetzer는 open
borders and international migration policy라는 책에서 실제 정치적 갈등과 언론 보도와의 관계 연구를 토대로,
이민 사회로 인한 정치적 갈등은 이민자로 인한 것이 아닌 지나친 정치적 이슈화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연, 이러한 선거 결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이 사건은 국내 정치를 위해 해외 거주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그들이 역으로 국내 및 국제 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극적인 시나리오의 경우, 두 국가에서 모두 투표할 수 있는 이중 국적자의 비율이 한 국가의 유권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다른 국가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예를 들면,한국 중국 이중 국적자가 한국 유권자의 60%를 차지하고, 이 국민들이 중국을 위해 독일 국가 이익나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투표를 할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쯤되면, 이중 국적자가 더 증가하게 되면, 오히려 이중국적 제도를 폐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이중 국적자의 증가로 인해 민주주의의 확산과 평화의 증진을 예상해볼 수도 있다. (중국, 한국 이중 국적자가 중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투표하고, 한, 중 갈등 상황을 거세게 반대할 경우가 바로 그 예이다. ) 전 세계적으로 이민과 귀화 및 이중 국적이 증가하는 오늘 날, 해외 자국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는 일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외교, 정치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은 2014년 기준 귀화자가 1.4백만명, 새터민이 3천만명으로 아직 이민자의 정치적 힘이 크지 않다. (출처: 출입국, 외국인 정책 본부) 하지만, 그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중 국적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역시 귀화자의 민주주의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특히, 북한이나 중국 등 우리나라와 정치 체제가 상이한 국가에서 이주한 경우, 이러한 문제가 더욱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출신 국적이나 종교를 기준,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외국인 추방 역시 불가능한 요즘, 우리는 공존할 수 밖에 없기에, 민주주의 교육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에르도안을 지지한 터키인들의 경우, 저교육층이 많았으며,
저교육층이 대다수인 임시 노동자가 상주하는 국가에서 에르도안 지지율 역시 높았다. 민주주의와 교육 수준 간에 밀접한 양의 상관 관계를 증명하는 경험적 연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민주주의 제도를 위해서는 고등 교육 이수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새로운 이민자에게 올바른 정치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