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은 싫지만,
히잡 금지는 더 싫어
유럽 내 무슬림 거주자들의 히잡(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나 니캅은 말할 것도 없다.) 착용을 두고 말들이 많다. 히잡 금지 찬성자들은 여성 억압과 신정 분리를 근거로,
히잡 허용 찬성자들은 여성의 종교적 자유를 근거로 입장 대립이 팽팽하다. 개인적으로 히잡은 나에게 “촌스럽고, 여성 억압적인,
지나치게 종교적인 보수적인” 사람들이 쓰는 천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부르카나 니캅에 비하면 그럭 저럭 봐줄 만” 했다. 최근, 유럽 사법 재판소에서는 중립성을 목적으로 고용자 재량에 따라 히잡 착용을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이 나왔고, 또 다시 유럽은 히잡을 두고,
옥신 각신 해댔다. 도대체 그 천 쪼가리가 뭐라고,
그거 하나에 국론이 분열되는지, 내가 직접 써보기로 했다.
나, 히잡을 쓰다.
히잡을 어떻게 쓸지도 모르고, 혼자 쓰고 나가기에 겁부터 나서, 작년부터 베를린에서 사는 이라크 친구에게 부탁했다.
히잡 쓰고 같이 베를린의 아랍인 타운, Hermannplatz에 가자고.
의외로 친구는 내 제안에 굉장히 기뻐했다. “스카프랑 고정 핀 가지고 너네 집에 갈게, 너가 히잡 쓴다니 진짜 좋다!” 라면서.
친구가 집에 오고, 나는 친구에게 화장은 해도 되는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지 물어봤다. 화장은 해도 되지만, 팔목과 손목,
그리고 몸이 보이면 안된다며, 찢어진 청바지나 미니 스커트, 반팔 옷 말고, 길고 단정한 옷을 입으라고 했다.
여성의 몸과 머리카락은 남성의 성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남녀 모두 성욕을 자제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가려야만 한다. 친구는 긴 스카프 천으로 금새 내 머리와 목을 휭휭 감아 히잡을 씌워 주었다.
히잡을 쓴 나의 모습 |
그 첫 느낌은? 솔직히 매우 불편했다. 덥기도 더웠고,
귀를 덮어 잘 들리지도 않았으며,
고개를 자유롭게 휙휙 돌리지도 못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친구는 자기도 처음에는 그랬다고, 금방 적응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히잡을 쓰면 행동 거지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랍인 타운에서 또 다른 시리아 출신 친구를 만났고,
식탁에 앉자 마자 그녀는 이라크 친구의 머리카락과 목 살갗이 살짝 보인다고,
가리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이에, 이라크 친구는 황급히 몸을 추스렸다.
“히잡을 쓰면,
노래도 들으면 안되고, 춤도 추면 안돼. 히잡을 쓰면 이슬람에서 허락되지 않은 것, 금지된 것,
Haram은 하면 안돼”
“남자들도 이런 게 있어?”
“아니, 남자들은 다 해도 돼.”
“불공평하지 않아?
화가 안나?”
“응, 엄청 불공평 해,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어”
“왜 히잡을 쓰고, 노래를 들으면 안돼? 왜 히잡을 쓰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면 안돼? 이라크는 더우니까 짧은 옷 입으면 좋잖아.
왜 안되는 거야?”
“히잡을 쓰면 Haram,하람은 절대 하면 안돼. 하람을 하고 싶으면 히잡을 안쓰면 돼. 히잡을 쓰는 것과 안 쓰는 것, 그 사이에 중간은 없어”
“불편하고, 불공평한데, 왜 히잡을 써? 벗으면 안돼?”
“나는 11살때부터 히잡을 써서,
이게 편해.
지금은 그냥 내 신체 일부 같아. 우리 아빠도 독일에 왔으니, 히잡을 벗고, 반바지랑 반팔 티도 입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못 하겠어. 그냥 왠지 창피하고, 부끄러울 거 같아.”
영국 런던에서 무슬림이 범죄자로 추정되는 테러사건이 또 한번 일어났던 터라 나는 히잡을 쓰고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사람들이 나를 테러리스트로 보면 어쩌지 걱정도 되고, 나 역시 여성 억압을 내면화한 촌스러운 구시대적 여성으로 보일까 봐 걱정도 되었다. 의외로 베를린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베를린 사람들이 워낙 남의 일에 무관심하기는 하다.)
독일인 거주자가 대다수인 우리 집 근처에서는 몇몇 행인이 우리를 쳐다보긴 했지만,
그냥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는 정도였다.
아랍인 타운인 헤르만 플라츠가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거기서는 모든 여성이 히잡을 쓰고 있었고, 오히려 안쓰면 이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용감하게 혼자 히잡을 쓰고 거리를 활보했다.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마음 속이 불편했다.
히잡을 써보니,
히잡의 여성 차별적 면모가 피부로,
몸으로 느껴졌다.
진정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당연히 히잡을 벗어 던져야 하는 것이 맞았다.
히잡,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걸 넘어선 구조적 여성 억압
몇몇 히잡 찬성자들은 히잡을 여성 억압이 아닌 정체성 표현이자 개인의 패션 아이템으로 봐달라고 요구한다.
나도 솔직히 히잡은 자유롭게 허용되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라,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는데, 히잡을 입어보니 이건 정말 아니더라. 히잡이 패션 아이템이라고 하는 사람은 히잡을 한 번도 안 입어 본, 서구 급진적 다문화주의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천 하나 머리에 쓴 건데,
이로 인한 신체적, 사회적 제약이 너무나 많았다. 불편하고 거추장한 걸 넘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종교를 이름으로 여성에게만 온갖 제약을 강요하는 분명한 여성 억압이었다.
히잡,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 진짜로?!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들은 “원해서” 히잡을 쓴다는 것이다. 이라크 친구의 경우에서 처럼, 아버지나 남편은 히잡을 벗으라고 하는데도, 오히려 원해서 히잡을 쓰는 여성들도 많다.
우리는 이렇게 반문한다. 가부장제와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깊이 뿌리 내린 문화에서 여성들이 여성 억압을 스스로 내면화 하지는 않았는지를.
흔하디 흔한 우리 안의 여성 억압, 스키니진, 브래지어, 코르셋, 하이힐
문화 상대주의와 여성 억압 물타기
집에 오자 마자, 불편했던 히잡을 벗고, 옷을 갈아 입었다. 하루 종일 온 몸을 조여왔던 스키니 진을 벗는 데, 문뜩 드는 생각.
“스키니 진도 엄청 불편하네, 히잡이 우리 눈에 여성 억압적인 것 처럼, 스키니 진도 그렇지 않을 까?”
이렇게 생각하니,
여성 의복이 다 그랬다. 여성의 뒷태를 강조하는 스키니진은 날씬해야만 입을 수 있고, 하루 종일 입으면,
피가 안 통해 다리가 저린다.
각선미를 뽐내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다리를 항상 오므리고 있어야 하며, 계단을 올라갈 때는 가방으로 그 뒤를 가려야 한다.
브래지어나 보정 속옷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의복 중에는 히잡과는 반대로 여성의 성적 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옷들이 많았고, 이들은 하나 같이 다 불편했다.
가리느냐, 드러내느냐의 차이 뿐,
미니스커트나 히잡이나 둘 다 모두 여성 억압적 코드가 있었다. 다만, 우리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을 여성 억압을 내면화했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구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 둘 다 여성 차별적이니, 우리는 히잡을 비판하면 안되는 걸까? 몇몇 무슬림들은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여성 차별이 있는데,
왜 하필 무슬림만 비판 받는지 모르겠다고”
이 말은 맞으면서도 틀리다. 무슬림은 종교일 뿐,
지역과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기에 일반화될 수도 없다.
(실제로 대표적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세계 성 평등 랭킹에서 88위로, 116위인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었다.
운전도 못하고,
은행 계좌도 못할 정도로 여성 억압이 극심한 무슬림 국가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아프가니스탄 등 소수의 몇몇 국가다. 단지, 대중 매체로 인해, 우리에게 무슬림=여성 억압이라는 도식이 각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물타기는 여성 해방의 역사와 진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문화 상대주의로 여성 억압을 합리화, 정당화해서도 안된다.
실제로 지금은 당연한 여성들의 바지 착용은 여성 해방 투쟁의 결과이다. 18세기만 하더라도, 파리에서 바지를 입은 여성은 레스토랑, 극장 등 공공 장소의 출입이 거부됐고,
프랑스에서는 1980년까지는 여성이 바지를 입고 국회에 입장할 수조차 없었다. 68혁명 때, 불태워진 브래지어는 여성의 몸을 옥죄었던 코르셋의 여성 해방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2017년, 영국 여성들은 직장에서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될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동시에, 몇몇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입어도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은 입고 싶은 건 뭐든지 입을 수 있어야 하며, 뭘 입든 남성들의 눈 요기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여성 해방 투쟁 역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역시 투쟁의 결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과소 평가해서도 안되며, 문화적 상대주의로 물타기를 해서도 안된다.
무슬림 여성들, 나는 무슬림인 동시에 여성입니다.
히잡을 향한 비뚤어진 시선, 무슬림 여성에게는 또 다른 여성 억압과 인종 차별의 이중고
히잡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 의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히잡 착용은 비판되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슬림 여성들은 무슬림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것이다. 9.11 이 후로 계속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로 인하여, 무슬림 혐오 감정은 날로 더해지고 있으며,
이는 무차별 무슬림 시민 공격,
차별로 이어지기도 했다. 무고하고 억울한 무슬림 시민들은 이에 더 견고한 무슬림 정체성으로 똘똘 뭉쳤다.
실제로, 무슬림 이민 1세대는 소위 나일론 신자이지만, 2,3세대 청소년들의 경우 열혈 신자인 경우가 많다. 차별과 타자화로 인해 많은 이들은 비뚤어진 피해의식을 갖고 서구 문명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백인 주류 사회의 히잡 비판은 무슬림 전체에 대한 비판이자, 모독으로 들린다. 유럽 주류 사회가 히잡의 여성 억압을 백날 설명해 봤자,
무슬림 여성들 머릿속에 남는 건,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오만함, 위선과 인종 차별이다. 이들은 여성의 권리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차라리 히잡 쓰고 학교에 갈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한다.
무슬림들에게 유럽 사회가 고래 고래 외치는 자유와 평등은 백인 주류 사회만을 위한 것이다.
또한, 서구인들의 히잡 비판은 무슬림 차별이자 또 다른 여성 억압이 될 수 있다.
히잡은 여성들만 쓰는 의복이기에, 히잡을 쓰는 그녀들은 남성에 비해 더 많은 무슬림 혐오를 겪어야만 하며, 히잡 금지는 그녀들의 종교적 자유만을 침해한다.
보수 백인 남성, 위선의 결정체
히잡의 법적 금지를 주창하거나, 여성 억압을 이유로 격렬하게 비판하는 이들은
(적어도 독일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극우 혹은 보수 정당의 백인 남성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남녀의 전통 성역할과 가족 모델을 옹호하며,
양성 평등을 위한 사회의 적극적 개입 정책, Gender mainstreaming의 철폐를 요구한다. 아이는 부모가 가장 잘 키운다며, 3세 이하의 종일반 어린이집과 학교 철폐를 요구한다. 이는 워킹맘들에게 출산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라는 말과 같다. (현재, 독일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 종일반 어린이집과 학교를 대폭 늘려가고 있다.) 이들은 남성 특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무슬림 혐오와 인종 차별을 부추길 때는 히잡의 여성 억압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다.
제 3세계 여성과의 연대를
그녀들의 여성 억압이 진정으로 걱정된다면,
이에 우리도 함께 그녀들과 연대해 편견과 혐오 없이 히잡을 쓸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히잡을 벗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미니스커트를 금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다면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들과 우리들의 해방을 위해 우리는 우선 편견과 혐오 없이 히잡을 쓸 권리를 함께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성취되면 아마도 그녀들은 알아서 히잡을 벗어 던질 것이다. 그녀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우리는 묵묵히 기다려주어야 한다. 인식의 변화는 무슬림 여성들 내부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