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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4일 목요일

내 안에 작은 Nazi가 살고 있다.



내 안의 Nazi와의 전쟁


내 안에 Nazi 가 살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의 사전적 Nazi Nazi가 아닌 외국인, 이민자, 동성애 혐오를 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Nazi.) 다문화, 이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현상이 되었고, 전 세계에서 이로 인한 충돌, 갈등, 문제들이 들끓고 있는 듯 하다. 9.11 테러를 한 기점으로 무슬림과 서구 사회의 대립, 한국 내의 조선족 피살, 살해 사건, 이자스민 법, 다문화 가정 극혐주의 등등다문화(multikulti)는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의 문화적, 사회적 충돌을 예쁘게 포장한 냉소적이고, 비꼬는 말로 전락해버렸다


원래 나의 Blog 역시 다문화를 주제로 하고자 했다 하지만, 너무나 민감한 주제이고, 범위도 광범위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도 안났다. 하지만, 오늘은 기어이 펜을 들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독일 여행 중, 내 눈을 확 사로잡는 건물이 있었다. 이는 국회의사당도 아니요, 포츠담 궁전도 아니요, 브란덴부르그 토어도 아닌, 베를린 도심에 한 구멍가게였다. 상호도 기억나지 않지만, 천막에는 독일어로 독일&터키가 적혀 있었고, 서로 악수하는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던 걸로 생각난다. 도대체 얼마나 독일과 터키의 사이가 안좋으면 (혹은 좋으면?) 저런 그림을 가게에 그려놨을까 의아했다. 그 당시 독일 친구들은 터키 이민자들이 독일에서 많은 차별을 당하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가 동화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난 그저 그려러니 넘겼다.
4년 후, 독일에 다시 발을 디뎠다. 돈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방인으로서 살 수 있는 집은 그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나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대다수인 동네에서 살게 되었고, 그 가게의 그 그림이 뭘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이민자가 그렇겠지만, 특히 무슬림 이민자들은 독일에서 가장 큰 이민자 그룹으로서 가장 타자화되고, 수많은 고정관념과 반이민 정서의 표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동네(Offenbach)에 사는 사람들은 솔직히 한결같이 모두 꾀죄죄했다. 위생 상태도 불결했으며, 옷도 너무 더럽고, 싸보였고, 사람들의 태도도 선진국의 독일 시민이 아닌 후진국의 뒷골목 불량배같았다. (실제로, 이 동네는 내가 살았던 페루의 중하층민이 사는 동네와 느낌이 너무나 비슷했다. 순간 페루에 와있나 착각하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전형적인 독일 중산층이 근무하는 사무실촌(여의도와 비교하면 된다)으로 사무실 근처의 남자는 양복차림,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명품 가방을 든 모습 (대부분 백인이었다.)과는 정말 대조되었다. 


Hessen 주에서는 Offenbach 에 산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고, 심지어 자동차 번호판에 Offenbach 로 찍히는 것이 싫어,  Frankfurt에서 일부러 차를 등록하고, 그 후 Offenbach 로 이사오는 경우도 보았다. 잘 사는 사람 Frankfurt 사람들은 Offenbach에 대한 기괴한 소문들과 고정관념을 늘어놓았다. 거기에 가면 총 맞아 죽는다느니, 8시 이후로 나가면 집단 구타를 당한다느니 등등…. 다행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8개월 동안 사는 동안 (밤에도 쏘다니는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의건, 어떤 사회이건, 인간은 시각에 약하고, 보이는 대로 대상 혹은 상대를 판단하게 된다. 옷차림, 하는 행동에서부터 클래스(?)가 다른 이민자들과 독일 중산층을 매일 매일 보다 보면 정말 이민자들은 다 저런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중산층 이민자들, 특히 무슬림 이민자들도 있겠지만, 양복을 입은 그들은 이민자라는 딱지가 대놓고 붙진 않는다


비정상회담의 독일 다니엘이 독일에서 PEGIDA, 반이민모임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며, 걱정을 표명했다. 독일의 무슬림화가 무섭다며 나선 그들. (PEGIDA, 반이민정서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 들 뒤에는 바로 반이민 정서의 아버지 “Thilo Sarrazin”이 있었다 사라친은 도일의 좌파 정당인 SPD의 일원이었고, 베를린의 financial senator로 역임했다. 소위 잘나가는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독일이 사라진다(Deutschland schafft sich ab)”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반이민, 반무슬림 정서가 진정한 애국 행위임을 설파했다. 이 책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   독일의 극히 저조한 출산율(가임 여성당 1.36)이 큰 문제다.

  •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이민자 유입은 오히려 현대 사회의 변화된 노동 시장에 역효과를 불러인으킨다. (고도의 전문직이 필요하고, 단순 업무는 없어지므로)

  •   무슬림 이민자들은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조건으로 멍청하고, 게으르다.
  • 아시아 이민자들은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조건으로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 독일의 복지 혜택이 열등한 무슬림 이민자들만 유입시켰다. 이들은 이민자들의 높은 실업률로 다시 독일의 복지 정책에 부담을 준다.

  •   무슬림 가족들은 유독 출산율이 높으며, 무슬림은 문화적으로 배타적, 공격적이다.

  •   결국, 독일은 외국인에 대한 복지 혜택을 끊고, 무슬림 이민자 유입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

  •   이대로 가다간, 부지런하고, 준법 정신을 지키는 독일은 없어지고, 하층민들과 무슬림 이민자들이 다수인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150만부가 팔려나갔고, 무슬림 및 사회 소외 계층 혐오 등으로 인해 책 출간 이후 사라친은 SPD에서 쫓겨난다. 이 책 이 전엔, 엄숙하고 철저한 NAZI 역사 반성의 분위기에 어느 학자도 공식적으로 이민, 그것도 특정 종교를 가진 이민자들에 반대하지 못했고, 그렇게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 옳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사라친 이 후, 반 무슬림 이민은 애국 행위이자, 진심 어린 조국 걱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이 150만부나 팔렸다는 것,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철저히 과거사를 반성하고, 지난 날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독일의 노력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독일 사회에 적잖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에는 반 나치 운동, 반 사라친 운동 역시 굉장히 활발하다.)

처음으로 완독한 독일 책,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을 때면 사람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고 심지어 몇몇은 책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시아 여자가 반(무슬림)이민을 주창하는 책을 읽는게 신기했나 보다. 참고로, 이 책에서 아시아 인들은 추앙받으며, 더욱더 많은 (극동) 아시아 이민자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사라친은 설파한다.

요즘 반 이민 정서는 더욱더 교묘해져서,대놓고 반이민, 반 망명자 수용을 외치는 것이 아닌, 착하고, 교육받고, 독일 사회의 가치를 공유하는 "좋은" 이민자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독일이 망명자나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데 전혀 반감이 없어요, 그러나, 몇몇 이민자들은...."의 논리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안에도 역시 Nazi와 사라친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들이 내 머릿 속에서 고개를 들이밀 때마다 나는 깜짝 깜짝놀란다


어제도 공원에서 책을 읽던 중, 여느 날처럼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 내놓고 온몸을 덮은 차도르나 눈만 내놓은 부르카를 쓴 여성들과 아이들. 왠지 짜증이 났다. 머리카락만 가리는 히잡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짜증났다. 이 더운 여름에 왜 저렇게 다니는가? 코란에서는 부르카나 차도르를 써야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데. 이 더운 여름에 온 몸을 휘감은 여성과 그 옆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남성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가끔은 걸음마를 간 뗀 4살 아이에게 차도르를 입힌 것도 독일에서보았다. 그리고 차도르를 입은 여성들은 4-5명의 자녀와 함께 있었다. 이것도 불쾌했다. 나도 모르게 무슬림 이민을 빈곤과 연결짓고, 많은 자녀 수를 무책임 혹은 독일의 Kindergeld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아이가 25세가 될 때까지 나오는 돈으로 소득 수준에 따라 금액의 양이 결정된다. 최대 수령액-첫째,둘째 아이: 184유로, 셋째 아이: 190유로, 넷째 아이부터 215유로)와 연결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에 경악했다


내가 사는 곳에 흔히 보는 양아치, 불량배같은 이민자 청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신문 기사에서 읽은 이민자 출신 근본주의자들의 기사가 생각났으며, 이러다 정말 내가 살고자 하는 독일이 저렇게 되진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인종, 종교, 개인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을 내 삶의 개인적 목표로 삼았건만,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싫었다.


생각해보면, 개인이 무엇을 입든 개인의 선택이고, 우리가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부르카나 차도르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성형수술이나, 병적인 다이어트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내가 사는 곳이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곳일뿐, 다른 마을에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것일수도 있는 것이었다. (부유함과 시민의식 간의 상관관계를 규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절대 다수의 양아치화(?)(독일어로 Asozial)가 독일 빈곤계층 마을에서는 실현되고 있었다. ) 이슬람 근본주의자 중에는 독일 태생의 독일 인들도 많았다.




아무튼, 내가 이제까지 본 다문화는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미완의 모습이다. 서구와 비서구의 충돌로 자주 꼽히는 문화적 상대주의와 윤리적 절대주의의 충돌, 인권 문제, 이민자의 문화를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 것인가하는 첨예한 대립과 논란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시민들도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독일의 관대한 복지 정책으로 빈곤 계층의 이민자가 꾸준히 독일에 유입되는 것도 사실이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독일 경제,사회,문화에 미칠 영향은 아직도 미지수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독일 역시 젊은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니, 이미 한국에서도 연이은 조선족 피살/살해 소식들로 이민자 문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이민 문제, 다문화에 대해 어떠한 답도 내리지 못하겠다. 다문화가 과연 성숙해질 수 있기는 한 지에 근본적인 회의감도 들고, 난민 수용에는 인색하면서도, 이민자들을 교육 및 소득 수준으로 줄세워 우수한 이민자들을 유치하려는 국가의 이중적 태도가 이해가 가면서도 인권측면에서 옳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다. 앞으로 내 스스로 답을 구하는 것 역시 나의 개인적인 목표이다.일단, 최대한 종교/소득수준/출신 국적 등 조건에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으로 인간을 대하려는 데, 고정관념이나 짧은 지식, 언론의 편파 플레이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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