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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1일 화요일

Epilogue

대학교 시절 이후로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처음이다. ´왜´ 나는 글을 쓰게 되었을까? 글을 쓰는 것은 소질이 없다고 생각되던 나에게 부끄러운 일, 특히 나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치졸한 글솜씨와 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생각만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블로그가 나의 자서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떠한 맥락에서, 무슨 목표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써야만 할 듯하다. 마치, 책의 첫 장이 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내 글쓰기는 아직 완성품이 아닌 미래, 현재 진행이기에, 에필로그를 통해 정리를 해두고 싶다.

내가 글을 쓴다고 결정하기 까지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해야할 듯 하다. 어릴 때부터, 항상 안정적인 직장, 출세만을 목표로 살아왔고, 이는 나의 중,고,고시 생활의 점철된 가치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항상 성공하고 싶었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기에, 난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정말 나의 목슴을 걸고 공부했던 것 같다. 물론, 이게 오히려 실패 요인이었던 듯하다.  나의 고시생활은 지극히 소심하고 예민한, 활동적인 나에게 지옥같은 시간이었고, 응급실 행과 오랜 정신과 진료에 기댄 고시 생활은 1차 시험 실패 이후 미련없이 접게 됐다.

한 순간, 내 인생 전부였던 외교관이라는 꿈이 사라졌다. 때 마침, 남자친구가 독일인이었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독일에 가게 되었고, 내가 절대로 일하지 않으리라던 대기업에 불운하게도 취직을 하게 됐다. 꿈이 없는 생활, 목표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합격 여부에 안절부절함과 불안함에서 탈출하니, 인생은 굉장히 달콤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아늑함과 소소한 일상은 생각보다 행복했다. 퇴근 후 친구들과 마시는 맥주 한잔, 함께 요리하는 시간들, 빈둥거리는 주말은 정말 너무나 달콤했다. 마음껏 놀아도 되는 이 기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는 죄책감, 일에 보상 휴식은 정말이지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업에 대한 열정은 전혀 식은 것이 아니었다. 독일어로 못한 채 밑바닥부터 시작하면 오히려 성공, 인정이란 가치를 단념할 줄 알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아까운 시간을 팔아 남으 허드렛일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일이 너무 싫어졌다. 일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멘토이자 동반자인 남자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얘기해주었다. ´내가좋아하는 일?´ 일로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었으면서도 난 어리석게도 단 한번도 이 질문을 나에게 해본적이 없었다. 지난 1년 반 독일 일상 생활에서 이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드디어 난 답을 찾았다.

바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와 개인의 시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 특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편견을 깨부수는 것, 문화의 융합과 공존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충돌, 혹은 융합 속에서 그 공간에 속한 개개인의 감정과 정체성을 간접 경험하는 것, 이런 것들이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독일 생활´은 매일 매일 흥미로운 사건들과 인간관계로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었고, 결국 나는 비로소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인생의 작은 목표가 생겼다면, 이는 ´국적,피부색, 출신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대접받는 편견없는 세상´이다. 독일은 이미 대도시의 50프로의 인구가 외국인/이민 2세일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자의든 타의든 공존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외국인 출신 방송인들이 인기를 얻을 정도로 외국 문화의 존재감이 커지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건, 아직 다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문화가 강요되는 한국 상황에서(독일도 마찬가지이다.) 피상적인 신문기사가 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왜곡시키고, 결정하며, 이러한 편견이 무지로 인해 비판없이 수용된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조류가 되었고, 한국 역시 이를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한다. 타문화의 유입은 한국 문화에 다양한 색채를 가미해주고,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주며, 새로운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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