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차 새댁이 부부 생활이 어떻다라고 단정 짓기에는 짬밥도 안되고, 깜냥도 안되지만,
이는 끝없는 역지 사지를 위한 대화, 타협 그리고 공동의 의사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육아나 집안일 같은 “공동의 의무”를 독박쓰고 한다는 느낌이 들면,
열불이 난다.
다른 부부는 어떤 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이럴 때 항상 “규칙”을 정한다.
나는 이게 참 “독일”스럽다고 느꼈는데, 다른 한독, 독독 부부들은 어떤 지도 궁금하다.
내가 이걸 “독일”스럽다고 한 이유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족끼리 “규칙”을 만들고,
지켜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결혼 생활을 해보니, 엄마든 아빠든 누구 한 사람의 독박 희생이 있었기에 이게 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적어도 집안일에 관해서는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맡아 하는게 모종의 규칙이 었을 테고,
그래서 엄마는 끊임 없이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나 싶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가족끼리 에누리 없이 정 떨어지게 무슨 규칙인가 해서, 가족 규칙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남편의 경우에는 이게 굉장히 자연스러웠을 거다.
독일에서는 19세가 되면 독립해, 부모님과 따로 사는데, (심지어 부모님 집의 지하실을 자취방으로 마련하더라도, 꼭 독립된 공간을 갖는다!)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해 대부분 2-5명이 함께 사는 shared apartment에서 한다.
요즘에는 집 주인이 청소 담당 가사 도우미를 따로 고용해, 집 계약서에 명시해 놓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동거인들이 함께 “동거 규칙”을 세운다.
이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일주일에 파티를 몇 번 열 건지, 몇 시까지 크게 음악을 들어야 하는 지 등 엄청 세세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 남편은 뼛 속까지 엔지니어라서,
문제가 보이면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효율성이 우선이기에 비효율적인 모든 것은 “문제”이며, 해결책 역시 “효율적”이어야 한다.
이에 남편이 먼저 규칙을 제안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나도 규칙 있는 삶이 훨씬 좋다.
1.
문제 인식과 규칙 제안
우리 둘 다 역지사지가 몸에 밴 성인 군자가 아니기에,
불공평 혹은 불합리한 게 있으면,
먼저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면 3,3,1 규칙인데, 일주일에 3일씩 번갈아 아기를 보고,
일요일은 세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 역시 육아를 하고 싶다며, 1년 육아 휴직을 냈지만, 육아는 돌발 상황이 많아, 우리 둘다 아기의 울음 소리에 스탠바이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먼저 해결해 주길 기다리면서 슬금 슬금 눈치 볼 때도 많아졌다. 남편 눈에는 당연히 이런 상황이 “비효율”적이었고, 이에 남편은 3,3,1 규칙을 제안한다.
시간을 더욱더 효율적으로 쓰고, 육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함이 목적인 것이다.
2.
공평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
효율성만큼이나 중요한 규칙은 바로 공평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이다.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상대방이 납득하지 않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끼면,
이건 악법이다.
남편이 먼저 왜 이 규칙을 도입하는 지 설명하고, 우리는 공평한 규칙 만들기에 돌입한다. 남편은 현재 인수 인계를 위해 월요일부터 수요일 주 20시간 근무를 하는데, 남편은 근무도 일이라며,
근무 시간 역시 육아 시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근무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며,
불공평하다고 따졌고,
남편 역시 이에 “동의”했다. 결국, 우리는 월,화,수 중에 내가 아기를 하루 보고, 나머지 이틀을 baby free day로 사용하고, 남편은 반대로 월,화,수 중 이틀을 baby free day로 하고, 나머지 하루를 baby free day로 사용하기로 했다. 남편이 일하는 월,화,수요일이 내 baby free day가 되면 나는 남편이 퇴근한 오후에만 내 시간을 즐길 수 있기에,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정하는 데는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커서는 안된다.
둘 다 서로 수긍하고, 동의해,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나중에 이를 어길 수 없다.
벌금은 없더라도,
이미 서로 동의한 마당에, 규칙을 어기면 체면과 신뢰를 동시에 잃는다.
잔소리는 덤이다.
3.
예외 조항 및 세부 규칙 합의
더욱더 효율적 규칙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예외 조항을 둔다. 예를 들면,
아무리 baby free day라도, 요리나 청소 혹은 급한 일이 있을 때면 잠깐 아기를 봐준다는 것이다. 낮에 편하자고 낮잠 너무 많이 재워서 밤에 안 잘 것을 방지하고자, baby free time을 밤까지 연장한다.
그 날 밤은 새벽 6시까지 한 사람이 기저귀도 갈고, 트림도 시키는 등 아기 돌보기에 전담한다.
4.
규칙 시범 실행 및 재조정
규칙의 세부적 그림까지 나오면, 우선 2주간 시범 실행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반영하여, 필요한 경우,
규칙을 재조정한다.
처음에는 하나 였던 규칙이 여러 개-
식사 중 핸드폰 사용 금지,
일요일 인터넷 사용 금지, 청소, 요리 등등 - 로 늘어나고, 예외 조항까지 생기면서,
참 뭐하러 이렇게 복잡하게 사나 싶기도 하다. 독일이 이래서 비효율적 이리만큼 복잡한 규칙이 있는 거구나 이해가 단번에 간다. (독일인들의 효율성을 비꼰efficient
inefficiency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부부 서로가 공평하게 육아, 가사를 분담하려면 규칙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서로에게 공평하고,
효율적인 규칙을 찾으려면 예외 조항과 세부 규칙이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안 그러면 우리 엄마처럼 가사,
육아 독박을 했거나, 매일 매일 누가 애를 더 보는지를 두고 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사는지 정말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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