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자라온 나에게 독일 스타트업은 충격이나 다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친구와의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자 하는 마음에 그냥 첫 번째로 붙여주는 회사에 왔다.
(이미 베를린 회사 30여 군데에서 퇴짜를 맞은 바,
그냥 아무데나 붙여주면 가고 싶었다.)
SCM 부서이기에 COO와 1시간 동안 Skype 인터뷰를 마친 후,
5일만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왔다. 그것도 매우 캐쥬얼하게 스카이프 메시지로. ㅎㅎ 솔직히 스타트업이고 스카이프 면접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사람을 뽑길래 아무 기대도 안했다. 연봉이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지만, 회사 출근 전날까지 사기 아닌가 긴가 민가 했다. 입사 후에 알고 보니, 유럽에서 온갖 상을 휩쓴 떠오르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냥 운좋게 얻어걸린 것이었다.
제일 작은 COO 책상과 자리
출근 전날까지 회사 방문도 안했고, COO얼굴도 한 번도 못봤다. 회사는 베를린 마우어파크 3분 거리 공장으로 쓰였던 낡은 건물을 오피스로 개조한 공간이다. 1년에 600%씩 크다 보니,
한 달에만
10명씩 새로 채용됐고, 이에 사무실은 정말 미어 터졌다.
뭐 여기까지는 그려러니 했는데, 출근 인사를 하러 COO자리에 간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좁은 방에는 책상 16개가 빼곡이 4X4로 들어차 있었고,
COO는 그 중에서도 창문도 안 열리는 가장 구석탱이였고,
책상도 다른 직원의 2/3크기로 팔 한번 못 필 것 같았다. COO키가 180cm인데 152cm인 나보다 더 작은 책상을 썼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위계 서열 순으로 자리가 배치되며, C-level 분들은 더구나 전망 좋은 위치에 사원
5명은 들어갈 만한 방을 독차지 하는데 말이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당연히 그렇듯이 위계 질서에 상관없이 이름으로 호명했다. 당연히, 나이를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냥 모두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평등한 직장 동료 관계이지, 언니 오빠,
선후배 개념따위는 없었다. 한국 회사 입사 첫 날,
나이와 학번,
직급으로 5분만에 서열이 정리됐던 거와는 너무나 달랐다.
위계 질서 없는 자유 분방한 회식 분위기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고,
또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CEO, COO, CTO가 손수 써준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지만, 직원 수 200명을 훌쩍 넘는데,
참으로 감동이었다.
크리스마스 회식 당일,
더 한번 놀랐다. 스타트업 근무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일할 때도 사원 차장 따위없는데,
놀 때는 말이 필요 없었다.
한국처럼 무언으로 약속된 자리 배치 코드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서로 섞여 앉았고, 높은 사람이 발언,
농담 독점권을 갖기도 않았으며, 낮은 사람은 거기에 억지 웃음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COO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면 직원들은 자연스레 먼산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러한 사내 회식은 거의 연중 행사로, 팀 헤드와 C level 급은 일도 워낙 많았고, 일 끝나기 바삐 집으로 향했기에,
회식 자체가 많지 않았다.
한국은 보통 제일 높은 사람이 정 중앙에 앉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직급이 낮아지며, 간혹 예쁜 여성 직원은 높으신 분 옆이나 앞에 앉을 영광(?)이 주어진다. 운 안좋으면 회식 자리에서 잔소리만 내내 듣거나, 아니면 재미 없는 농담에 억지로 웃어줘야 하는데, 둘 중에 뭐가 더 힘든 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둘 다 곤욕스럽다.
거기에 강제로 술 마시는 것과 기분 좋은 척 해야하는 건 덤이다.
직급이 낮으면 회식 자리에서는 항상 그냥 들러리에 기쁨조 역할밖에는 없다. 웃기고 웃어주는 것 모두 위계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 회식 자리만큼 위계 질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자리도 없다.
직원들은 침대에서 재우고 자신은 소파베드 신세를 자처한 COO
이걸로 스타트업 컬쳐 쇼크는 끝나지 않았다.
얼마 후,
COO와 다른 팀원들과 출장을 가게 되었다. 대기업 출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호텔에서 1인 1실 (적어도 holiday inn이하로 내려가 본 적은 없었다.)이 당연했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1인 1실이겠거니 하고 호텔이 아닌 모텔에 도착하니 사람은 5명인데 방은 2개. 나와 여자 동료 방, 그리고 남자 동료 셋이서 방 2개를 나눠 쓴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원래 2인 1실인 방에 소파 침대를 부탁해서 3인 1실로 만들었는데,
COO가 자진해서 그 비좁은 소파에서 잤다는 것이다. 불편을 자처한 COO나 그걸 내버려둔 사원들이나 전부다 참 신기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COO는 우리들의 오렌지 주스를 직접 서빙해 주었고, 나도 그냥 적응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다. (COO가 제일 먼저 아침 식사 자리에 나와 있었고,
오렌지 주스와도 제일 가까웠기에 “합리적”
행동이었다.)
누가 누가 예쁘나? 물어볼 필요도 없는 독일 스타트업
위계 질서와는 상관 없지만, 신기한 독일 스타트업의 문화가 있다면 바로 “외모”에 대한 코멘트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스타트업 문화가 아닌 그냥 독일 문화이긴 하지 말이다.
한국 회사에서는 새로운 여성 직원이 들어오면 늘 외모에 대해 말이 많았다.
심지어 남성 직장 상사들은 “얼굴은 안 예쁜데, 일은 잘할 것 같아”,”너는 외모가 아쉬운 대신 성격이 좋다”, “많이 먹게 생겼다” 등등 참 외모에 대해 많이도 왈가 왈부했다. 그것도 대놓고. 당사자가 없으면 더 심해졌다. 여성 직원의 경우, 도대체 평가 기준이 외모인지 업무 능력인지 헷갈리기 까지 했다. 독일 회사 근무 후, 외모에 대한 평가는 일절 사라졌다. 원체 남의 일에 신경 안쓰는 독일 문화라 그렇겠지만, 하이힐은 웬 말인가,
그냥 집 앞 수퍼 가는 차림으로 슬리퍼 끌고 오는 직원도 많았다.
심지어, 회사 내에 이 전 미스 독일 출신 미모의 동료가 있었음에도, 그녀의 외모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독일 회사로 이직 후, 내가 얼마나 외모와 위계질서에 눌려 살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한국 회사에 있을 때는 여느 부장처럼 늙기 싫었다.
점심시간이든 회식이든,
업무가 지배하지 않는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조차 직위를 이용해 자기 얘기만 떠들어 대고, 은근히 “아랫 사람”들이 수발하는 걸 즐기는 그런 대리가, 과장이, 차장이, 부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스타트업이 우리 회사처럼 캐쥬얼하지도 않고,
독일 대기업 역시 한국보단 덜하지만,
모종의 위계 질서가 있다. 스타트업에 오니 언제 이 회사가 팔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적어도 내 숨을 조여오는 올가미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내 회사처럼 자유롭고,
평등하지는 않다.
게다가, 대기업에 비하면 단점도 많다. 그래도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거겠지.
전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태까지 한번도 한국회사에서 일해본적이 없고 전부다 독일회사에서만 일했는데 저에겐 당연한 것이 한국 회사에선 아니라는게 너무 충격적이네요..특히 외모 지적은 정말 독일에선 상상도 못할일이예요! 저 또한 현재 베를린 스타트업을 다니고 있는데 저희도 연중행사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CEO와 함께 한껏 취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췄다는..그런데 혹시 다니고 계시는 스타트업 (특히 연봉)관련되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전 현재 Werkstudent로 다니고 있는데 스타트업 연봉, 독일 연봉에 대해 궁금한게 너무 많은데 주위에는 다들 아직 학생들이여서 딱히 궁금증을 풀수가 없네요 ㅠㅠ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려 물어볼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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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네 연락 주세요 이거 어차피 비밀 댓글 아닌가요? 연봉은 회사분야 그리고 직책에 따라 완전 차이가 심한데..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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